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유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억제력을 가지기 위해서였다.
히틀러가 독재하던 나치 독일을 대상으로 말이다.
불확정성의 원리로 잘 알려진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에 있는 이상, 그가 우라늄의 연쇄 반응 현상을 이용해 원자폭탄을 개발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전쟁중이던 미국 역시 원자폭탄을 개발해야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허나 원자폭탄의 개발이 끝났을 시점에,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는 자살했다.
연이어 독일은 항복을 선언했다.
그렇다면 이 원자폭탄의 행방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그 답을 아주 잘 알고있다.
심지어 그 이름마저 알고있다.
히로시마에 '리틀 보이', 나가사키에 '팻 맨'
이 부분에서 한국인으로서 복잡한 감정이 일어난다.
두 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이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외쳤다.
이는 원자폭탄이, 오펜하이머가 한국 독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영화의 중반부부터 강하게 머리를 맴돌았다.
영화속에서, 그리고 당시 현실에서 미국 대중들은 오펜하이머에게 열광한다.
미국의 병사들을 영원할것만 같았던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승전의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오펜하이머는 고뇌하며, 아파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자신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으며, 지식이 적에게 넘어갈 경우 가족, 동료, 나라를 깔끔히 지울 수 있는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아주 디테일하게 다룬다.
만일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오롯이 오펜하이머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겠으나 불가했다.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아도 일본이 말라죽어간다는 듯이 묘사되었으나, 해당 가정하에 우리의 조상은 얼마나 더 많은 시간동안 고통받았을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필자는 오펜하이머에도, 그를 떠받드는 대중에도 계속해서 감정이입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게 오펜하이머가 복잡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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